진실은 항상 뒤쪽에 있다. 뒷모습의 의미
"뒷모습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은 항상 뒤쪽에 있다." 저서 '뒷모습'에서 미셸 투르니에는 에드와르 부바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의 등을 들여다볼 때면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 아래 숨겨진 이야기, 즉 흉터나 문신, 자세와 움직임의 미묘한 뉘앙스를 곰곰이 상상하게 됩니다. 진실은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되돌아보지 못하는 이면에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얼굴 표정의 부재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호기심과 내면의 이야기를 듣게 만듭니다. 신원의 불확실성과 익명성은 단순한 초상화를 초월하여 보편적 인간성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이 진실을 말한다는 시대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입니다. 법적 증거로도 채택될 수 없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사진도 이제는 거짓말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스로 볼 수 없는 뒷모습을,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진실을 누군가 바라봐 주고 충고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영혼의 창 역할을 하는 얼굴과 달리 뒷모습은 전체를 보여 주지만 실체가 없는 것처럼 빈 여백으로 남아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의 여지를 남깁니다. 우리를 끌어들이는 이러한 신비로움과 호기심은 우리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곤 합니다.
일평생 뒷모습을 찍어 온 사진가 에드와르 부바
평생에 걸쳐 뒷모습만 찍어온 사진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진가 에드와르 부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간의 삶과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뒷모습 사진은 인간의 내면과 숨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연인과 아이, 노인 등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 에드와르 부바의 사진에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주석을 달아 2002년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이 바다를 바라보는 에드와르 부바의 사진은 언어와 문화, 상황을 초월하는 모성의 사랑과 동시에 깊은 취약점을 느끼게 합니다. 바다는 특유의 리듬으로 파도를 만들어내지만, 혼돈의 바람은 거친 역경으로 불어옵니다. 그러나 인생의 파도 속에서도 여성과 아이의 뒷모습에서 평온의 순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섬세한 움직임과 제스처에는 희망, 두려움, 호기심, 욕망이 캔버스 위에 투영됩니다. 에드와르 부바의 사진은 우리에게 잔잔한 웃음과 향수, 때로는 고독함, 그리움을 느끼게 합니다. 에드와르 부바의 뒷모습은 인간 상태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관찰자가 내성적인 깊이와 공감의 영역으로 더 깊이 파고들도록 유도합니다.
'벽'이 된 시인의 뒷모습, 정호승 시인의 시
곡률진 뒷모습의 실루엣은 많은 이야기와 잊힌 꿈에 대해 말합니다. 등의 곡선과 윤곽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시간의 흐름, 존재의 본성, 그리고 우리가 속한 세상 속에서의 위치 등 많은 것을 뒷모습은 보여줍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뒷모습>은 꾸임 없이 노출된, 금이가고 구멍이 뚫리고 낙서투성이인 담벼락, 즉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고 이제는 내 뒷모습이 아름다워졌으리라. 뒤돌아 보았으나 내 뒷모습은 이미 벽이 되어 있었다. 철조망이 쳐진 높은 시멘트 담벼락 금이 가고 구멍이 나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제주 푸른 바닷가 돌담이나 예천 금당실마을 고샅길 돌담은 되지 못하고 개나 사람이나 오줌을 누고 가는 으슥한 골목길 담쟁이조차 자라다 죽은 낙서투성이 담벼락 폭우에 와르르 무너진다 순간 누군가 담벼락에 그려놓은 작은 새 한 마리 포르르 날개를 펼치고 골목 끝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내 뒷모습에 가끔 새가 날아왔다고 맑은 새똥을 누고 갈 때가 있었다고 내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도 있었다고."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뒷모습이 담쟁이조차 자라지 않는 벽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지만 폭우가 무너트린 자신의 담벼락과 담벼락에 그려진 새를 보고 희망을 끈을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