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진과 시] 변신의 사진가 신디 셔먼과 어울리는 시 탐구

by 마이너스+ 2024. 3. 21.

 

ⓒ 신디 셔먼

신디 셔먼의 <Untitled Film Stills>시리즈와 고은 시인의 시 <무제> 비교

"예술가의 궁극적 목표는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남성이 여성을 보는 방법을 바꾸고,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드리우는 이 시야를 가리는 장막을 찢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거대한 목표죠. 너무 거대한 목표라서 관람객을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즐겁기라도 해야죠!"<신디 셔먼 인터뷰 중 발췌>, 신디 셔먼은 변화라는 파도를 그의 몸을 통해 표현한 사진가입니다. 그녀는 변신의 마법사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비판하는 수많은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그녀는 1980년대 초반 촬영한 사진 시리즈 "Untitled Film Stills"(1977-1980)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70개가 넘는 이미지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이미지에는 20세기 중반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를 고전 느와르 필름, 멜로드라마, 유럽 예술 영화와 같은 장면을 다양한 역할과 시나리오로 포즈를 취하는 셔먼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셔먼은 정체성, 성별, 여성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아름다움과 표현에 대한 기존의 개념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셔먼의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정작 그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기란 역설스럽게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시인 고은은 시 무제에서 '남도 슬그머니 내가 되고,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없다'라고 말하거나, ' 내 최대의 실패는 내가 남이 되어본 적이 없다는 것 죽어라고 나는 나만이었다는 것', '저승에 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남이 되었다.'라고 표현하며 셔먼의 사진과 묘한 대조를 보입니다. 아래의 고은 시인의 무제를 통해 시와 사진의 접점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1500년 전 약탈한 모든 것 어느덧 국보가 되더군 / 150년 전 그 시절의 장물도 슬그머니 가보가 되더군 이제까지 남도 남도 슬그머니 내가 되더군 / 그러므로 본디 나라는 것 도무지 없더군 / 이것저것 오래된 그것이 곧 나였더군 / 너는 내 과거이고 나는 네 미래이더군 이승 씁쓸하군 그간 내 최대의 실패는 내가 남이 되어본 적이 없다는 것 죽어라고 나는 나만이었다는 것 / 아, 제 온몸 던져 거미줄 치는 거미의 저승 거기 가서야 나는 생정 처음으로 남이 되더군 / 행여나 임이신가 그 임이 되더군" <고은, 무제, 전문>. 

신디 셔먼의 <Fairy Tales> 시리즈와 이대흠 시인의 시 <백설공주를 깨우지마> 비교

1985년에 제작된 신디 셔먼의 "Fairy Tales" 시리즈는 전통적인 동화 모티프에 원형을 재해석하고 전복하는 사진 시리즈입니다. 고전 동화, 민담,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셔먼은 환상과 기발함을 불러일으키는 정교한 장면을 구성합니다. 시리즈에서 그녀는 구출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로 묘사되기보다는 전통적인 성 역할과 서사에 도전하고 파괴하는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전반적으로 "동화"는 사진이라는 렌즈를 통해 문화 내러티브를 해체하고 재구상하는 셔먼의 능력을 보여주며, 사회 규범과 가치를 형성하는 데 있어 지속적으로 도발합니다. 셔먼의 "Fairy Tales" 시리즈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로 이대흠 시인의 '백설공주를 깨우지 마'라는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셔먼이 마녀로 분장해 ' 아름다워지기 위한 너의 노력이 추악하다'라고 말하는 인간들에게 인간들 또한 자신을 닮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너의 노력이 추악하다고 동화는 말한다 그러나 마귀여 나는 너의 지팡이 끝에서 깨끗한 욕망을 본다 이상하게도 동화라는 굴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이유 없이 나무와 새들이 너를 경계한다 너의 도구들이 너의 종교가 된 탓일까 질문을 던지지 않고 바람과 풀잎들이 너의 생활을 부도덕하다고 단정한다 너를 닮은 여자들이 이 밤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몸을 파는 서울에서 나는 너를 생각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뻐지고 싶은 벌을 받아서 너의 생은 그다지 위태로운가 거울은 늘 너를 배반하며 운명을 가르치려 한다 잠든 숲이 공주의 몸속으로 들어가 공주는 말이 없다 난쟁이들은 편견의 손으로 너의 욕망을 분지른다 숲에서는 눈 큰 짐승들이 썩은 나뭇가지 쪽으로 울음을 날리고 구름은 하늘을 둥그렇게 굴리고 있다 물소리 지워진 곳에서 물을 닮은 네가 울고 있구나 마귀여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외로운 자여 공주의 아름다움은 정해져 있어 비극과 희망을 모르고 너는 아름다움을 찾아 지팡이 더듬거린다 마귀여 휘파람을 불라 인간들은 자신을 닮은 너를 애써 외면하려 한다 어떤 경우라도 절대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인간 세상 아름다움 없으리 백설공주를 깨우지 마 공주가 깨면 나도 잠들어야 하리"<이대흠, 백설공주를 깨우지 마, 전문>. 

신디 셔먼이 <Centerfolds> 시리즈와 백무산 시인의 시 <변신> 살펴보기

1981년에 제작된 셔먼의 "Centerfolds" 시리즈는 젠더, 권력 역학, 정체성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한  개념적 자화상 분야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성인출판물의 센터폴드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대중문화 속에서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여성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셔먼이 "Centerfolds" 시리즈에서 표현한 인물들은 전통적인 매력을 구현하기보다는 취약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며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메이크업, 의상, 표정을 통해 셔먼은 마녀부터 괴로워하는 피해자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합니다. "Centerfolds"를 통해 셔먼은 상업 사진의 시각적 언어를 차용하고 이를 예술 영역 내에서 재맥락화 함으로써 시청자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이미지의 진정성과 구성 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합니다. 셔먼의 "Centerfolds" 시리즈와 잘 어울리는 백무산 시인의 시 변신을 소개합니다.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으로 분한 화자와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통해 '관행적인 나'와 질식할 것 같은 사회적 통념을 깨기를 희망합니다. 시는 신디 셔먼의 사진 시리즈와 다른 듯 같은 느낌이 묻어납니다. "화장기 짙은 여자가 길에서 알은체를 했다 사람 잘못 봤나 목울대를 보니 아는 얼굴이다 예전에 한동네 살던 노상 침울하던 청년이다 공수부대 제대하고 부산 가서 요리 산가 한다더니 여자가 되었다더라 지나가는 소문도 들었다 / 잡은 손의 감촉이 속살이다 그의 몸 모든 부분이 성기 부근일 것 같은 천박함이 후덜거린다 / 잘했다 잘했어! (엉겁결에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더러운 세상 볼 거 뭐 있어!(이 말은 목구멍에서 튀어나오기 직전에 간신히 억눌렀다) / 질식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질식해서 죽어가는 여자를 끄집어냈단다) 축하해!(이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정말로 순식간에 밝아졌다) / 그녀가 나를 보고 따라와 보라고 했다 나는 왜 아직도 나를 다 졸업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마르고 닳도록 관행적으로 나인가 내 안의 짐승도 있고 바람도 있고 나무도 있고 기괴한 빛도 있고 야수들도 수두룩한데 따라가 질식해서 죽을 것 같은 야수 한 마리 끄집어내 봐야겠다 나를 잡아먹도록"<백무산, 변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