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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 노동자와 이주민의 삶을 포착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by 마이너스+ 2024. 4. 8.

ⓒ 세바스티앙 살가도

고달픈 노동자(Workers)의 삶을 노래한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김용택 시인의 <세상의 길가> 감상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식민지배의 잔재 때문에 독자적인 경제발전 보다는 단지 선진국의 원료공급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험난한 변혁기에 접어든 이러한 곳의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의 삶을 고통과 동정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들의 존엄성을 사진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살가도는 "만일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단순히 측은한 감정만을 느낀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진 속의 사람들은 비참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타인들이 아니라, 지구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살가도는 사건의 의미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찍는 사진에는 귀 기울일 만한 메시지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진가였습니다. 따라서 살가도는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을 촬영할 때 오랜 기간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며 사진에 담았습니다. 피사체와의 이러한 관계를 통해 촬영된 살가도의 사진은 현대 사회의 가장 진실한 보고서인 동시에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극한 상황을 촬영해 온 살가도는 진흙 속에서 일하는 금광 노동자들과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들, 제철소, 오지라고 알려진 사헬지역, 샤드, 에티오피아, 말리 수단 등에서 장시간에 걸쳐 촬영을 하며 다양한 육체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경제학도였던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펜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 그 시대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과 노동자와 극빈자의 삶, 그리고 노동의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워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진가였습니다. Workers 프로젝트와 어울리는 시로는 김용택 시인의 <세상의 길가>가 있습니다.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김용택, 세상의 길가, 전문>.

전쟁과 피난의 세기가 낳은 비극, 이주민(Migrations)과 함께한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시 <맨발>

 20세기는 전쟁과 피난의 세기였습니다. 수많은 전쟁과 분쟁으로 이민자와 난민, 망명자가 넘쳐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살가도는 1993년부터 7년이란 긴 기간에 걸쳐 세계 43개국을 돌며, 전쟁의 최대 희생자인 민간인들의 참상과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투쟁하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그만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Migrations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극심한 가뭄과 식수 부족, 청결하지 못한 위생으로 심각한 생존위협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살가도는 "제 소망은 이런 상황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도움의 손길을 잡는 것입니다. 제 사진을 보러 온 사람과 보고 나서 나가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라며, 자신의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사진이 발표된 후,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에티오피아와 수단으로 의료봉사의 손길을 건넸다고 합니다. "사진의 힘은, 모든 이들에게 번역할 필요도 없이 바로 전달된다는 데 있습니다."라고 말한 살가도는 사진의 진실된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사진가였습니다. Migrations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시로는 문태준 시인의 시 <맨발>이 있습니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 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문태준, 맨발, 전문>. 

창세기(Genesis) 지구 모습을 간직한 살가도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권영상 시인의 시 <지구 살리기>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렌즈를 통해 인류와 지구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혹독한 노동자들의 삶과 분쟁을 피해 피신한 난민들의 모습 외에도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을 사진으로 담아냈습니다. 그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창세기(Genesis)"는 현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순수한 지구의 상태를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땅과 생명을 찾아 그곳의 산, 사막, 바다, 동물과 인간을 재발견하게 합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관계를 조명하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부터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8년이라는 대장정 끝에 탄생한 Genesis 프로젝트는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아직도 창세기 때의 상태로 남아 있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되새기게 합니다. 어울리는 시로는 권영상 시인의 <지구 살리기>가 있습니니다. "종이 한 장을 휙, 구겨 던진다. 먼 산 나무 한 그루가 쿵, 톱날에 쓰러진다. 딸깍, 전등을 켠다. 그 소리에 남극의 방산 한 모퉁이가 쿵, 무너진다."<권영상, 지구 살리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