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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 사물과의 교감이 사진과 시에서 중요한 이유

by 마이너스+ 2024. 4. 2.

 

ⓒ 미리누리는 천국

교감회로가 작동하면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오늘은 사진과 시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둘 다 머리 아픈 주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고 시를 써본 경험이 있습니다. 매번 봐 왔지만 지나쳐 버렸던 것들, 남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들이 오히려 제가 사랑하는 소재들이며 영감의 대상입니다. 한 번쯤 길가에 핀 작은 제비꽃 때문에 걸음을 멈추신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사진과 교감할 준비가 되신 분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진을 접해 왔습니다. 혹시 그 많은 사진 중에서 마음을 찌르는 사진이 있었나요? 우리는 단순히 그 사진을 보았지만, 실은 단 한번 지나간 그날의 감정과 조우했던 겁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상처받고, 마음에 금이 갔으며, 뾰족했고, 고독했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떠나지 마. 나를 붙잡아줘’, ‘어디로 가야 하지?’, ‘결국, 덩그러니 혼자 남았어’ 사진가의 마음 안에서 이는 감정이 사진이라는 남의 몸을 빌려 밖으로 나갑니다. 사진에 찍힌 대상들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렇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큰 의미가 됩니다.

사물에 의미가 부여되면 사진이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입니다. 돌멩이 하나, 나무 하나, 버려진 꽃신 하나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가, 시인이 불러 주었을 때라야 그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 줍니다. 일본 선불교에서는 한줄기 찬란한 빛을 보고 홀연히 깨닫는 것을 사토리라고 합니다. 빛이 아파해야 색이 만들어지고 사진이 만들어집니다. 빛의 희생 없이는 어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오래 한 사진가들은 빛을 관조하고 대상을 관조하다가 아득히 멀었던 감정, 정처 없이 방황했던 마음을 붙잡고 어느 순간 일본의 선불교처럼 홀연히 깨우치게 되어 대상의 알탕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앎을 보게 됩니다. 서두에서 마음을 찌르는 사진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카메라 루시다에서 푼크툼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푼크툼이란 대상의 특정 부분이나 사소한 특징이 마치 화살처럼 감정을 찔러오는 강렬함을 말합니다. 어떤 사진을 통해서 화살처럼 찔러오는 느낌을 받으신 분은 그 사진과의 교감회로가 작동한 겁니다. 이런 순간은 시를 쓰면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깨우침이 강하게 찔러와 시를 쓰게 만듭니다.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깨우치면 시가 된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동물은 가죽이라도 남긴다는 데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구나'라고 사진이 시들해질 무렵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흑백 카메라’라는 시입니다. "내 가슴에는 흑백 카메라가 담겨 있어 검은 심장 하얗게 태울 필름 한 롤 돌돌 감고 태양이 싫어 꼭꼭 숨은 아픈 상처 잠자고 있어 먼지 낀 렌즈가 있어. 화려하지 않아도 걱정 마 반짝하고 빛날 때 내 심장을 덥혀 널 밝게 찍을 거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돼 그러면 내가 그림자로 다가가 어둡게, 아픈 부위를 감쌀 거니까. 찍다가 찍다가 내 심장이 타버려도 괜찮아. 그때쯤이면 내 안의 아픔도 하얀 재가 되어 날아갔을 거니까"<미리누리천국, 흑백 카메라, 전문>, 시를 처음 시작할 무렵 쓴 시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며 희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도 그렇지만, 시도 사소한 것에 대한 깨우침이며 나에 대한 앎이었습니다. 복사를 하다 종이에 손을 베었을 때 ‘과연 종이 때문에 베인 건가? '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 시도 있습니다. ‘컬러가 없는 흑백의 글자들이 날카로운 칼을 검은 글 속에 숨겼다’ 결국, ‘모질게 쓴 글 때문에 마음이 베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려온 책을 읽다가 먼저 빌려간 사람이 그어 놓은 밑줄과 형광펜으로 그려 넣은 별표를 보고 '아~~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먼저 빌려간 이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구나!' 하고 깨닫고 시를 쓰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이런 것도 소재가 될까' 하고 의심하는 순간 상상력은 숨어버리거나 굳어져 버립니다.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이 영감을 불러와 사진이 되고 또 시가 됩니다. 사진은 말을 못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진과 시는 뺀다는 점에서 어울립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에 눈길을 주는 오늘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여러분께로 와서 꽃이 되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