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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 마이클 케나 사진 속 시간과 나무와 여백의 의미 살펴보기

by 마이너스+ 2024. 3. 19.

ⓒ 마이클 케나

시간을 누적해 창조한 마이클 케나의 사진 속 시간과 고형렬, 황규관 시인이 바라본 시간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는 카메라 셔터를 장시간 노출시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누적된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빛이 부드러운 이른 아침과  해 질 녘 시간대를 좋아했던 그는 야간 사진을 통해 우리가 어둠을 꿰뚫어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시끄럽고, 다채롭고, 방해 요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명상할 수 있는 오아시스,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침묵이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은 매우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고 생산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이클 케나>. 마이클 케나에게는 "우아한, 고요한, 명상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립니다. 그의 밤 이미지의 신비로움과 세련되고 단순한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흔히 봐 왔던 풍경도 오랜 장노출과 낯선 시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처럼 창조해 냅니다. 시인의 시간과 사진가의 시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고형렬 시인의 '시간'이라는 시를 통해 시인과 사진가의 시간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젖은 신문처럼 젖어버린 한 시간이 쭈그려 앉아 콩나물을 다듬는다. 시간은 손톱으로 꽁지를 끊는다. 나는 유리창처럼 낯선 시간이 된다. 시간은 옛날 물레의 모습으로 흐린 창가에 아침부터 앉아 있다. 실로 현생의 시간은 눈처럼 가까워 시간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시간은 한 남자의 시간이 아니다. 어두운 베란다 창가에 시간은 혼자 무릎을 세우고 원숭이처럼 앉아 한 양푼의 콩나물을 다듬고 있다. 명태 눈껍질 같은 콩나물 눈껍질, 콩나물 눈껍질 같은 시간의 눈동자. 한낮처럼 창밖을 지나가는 생은, 텅, 두개골과 등뼈로 앉아 있다. 낯익은 시간만 빈 몸으로 남아 있다." <고형렬, 시간, 전문> 마이클 케나의 카메라는 손톱으로 콩나물 꽁지를 끊듯 시간을 끊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쭈그려 앉아 기다리는 시간은 그의 시간만은 아닐 것입니다. 풍경의 시간이며 나무의 시간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시는 황규관 시인의 시간들이라는 시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시간이 있다 엉킨 실타래를 가만가만 풀어내듯 고독을 택했을 때 인간의 시간은 완성된다. 사슴에게는 사슴의 시간이, 벌판에서 봄풀이 자라나듯 그치지 않고 솟아난다. 그 풀을 뜯으며 숲 쪽으로 귀를 세우는 게 사슴의 시간이다.  당신에게도 오래된 당신의 무늬가 있다. 그것이 당신의 손가락 마디에 굵게 뭉쳐 밤마다 음악이 된다. 자갈밭처럼 날카롭고 뭉툭하고 동그랗지만 곧잘 우는 시간들이 우주에 가득하다. 인간의 시간도, 강물의 시간도 그러나 흘러간다. 흘러가지 못한 시간만이 심장을 물어뜯고 우리를 헤매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이 된다"<황규관, 시간들, 전문>. 시인은 왜 '흘러가지 못한 시간만이 사랑이 된다'라고 했을까요? 시간을 붙잡고 시간을 얼어붙게 하고 고독을 택했을 때 인간의 시간이 완성된다고 노래했을까요? 마이클 케나의 장노출은 오래도록 흘러가는 풍경의 시간을 프레임에 가둡니다. 결국 풍경의 시간은 프레임 안에서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게 됩니다. 독신으로 살고 있는 케나는 풍경과 사랑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를 사랑했던 사진가 마이클 케나와 김선태 시인의 <마음의 풍경>, 도종환 시인의 시 <나무> 살펴보기

어린 소년 시절 영국 북부의 위드네스(Widnes)에서 자란 케나는 좋아하는 자신만의 나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형제들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나무를 갖고 있었고 나무에 높이 올라 즐기곤 했습니다. 그가 나무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가 나무를 촬영하는 이유는 나무는 준비할 필요가 없고, 대답도 하지 않으며, 독립적이며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장시간 노출을 하는 몇 시간 동안에도 추운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행복해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가 촬영한 홋카이도의 겨울나무는 자연 그 자체,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세계를 고정시키는 듯합니다. "나는 특히 겨울철의 홋카이도를 좋아합니다. 풍경이 얼음과 눈이 겹겹이 쌓여 새하얀 캔버스, 잎이 없는 나무, 침묵" 호숫가로 뻗어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이 연상됩니다. 케나는 혹독한 추위와 거칠고 절망적인 환경이 품고 있는 뜨거운 대지를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이클 케나의 사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시 김선태 시인의 마음의 풍경과 도종환 시인의 시 나무를 소개합니다. 먼저 김선태 시인의 마음의 풍경 일부입니다. "-중략- [절해고도] 한겨울, 절해고도 갯바위 끝에 누군가 앉아 있다 낚싯대 드리운 채 꼼짝 않고 있다. 눈이 내린다 낚싯대 위로 눈이 쌓인다 눈은 모든 풍경을 지우고 마음마저 지운다. 시선은 초릿대 끝 화살처럼 꽂혀 있다 그러나 진종일 기다리는 건 어신이 아니다 대물은 물 건너갔다, 다만 깨끗한 마음 하나 건져 올리기 위해 스스로 절해고도가 되어 갯바위 끝에 앉아 있다 꼼짝 않고 있다." <김선태, 마음의 풍경, 전문>. 김선태 시인의 시는 눈이 쌓인 훗가이도에서 인고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케나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 합니다. 두 번째 시 도종환 시인의 나무입니다. " 퍼붓는 빗발을 끝까지 다 맞고 난 나무들은 아름답다. 밤새 제 눈물로 제 몸을 씻고 해 뜨는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사람처럼 슬픔 속에 고요하다. 바람과 눈보라를 안고 서 있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고통으로 제 살에 다가오는 것들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잔가지만큼 넓게 넓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아름답다. 허욕과 먼지 많은 세상을 견결히 지키고 서 있어 더욱 빛난다. 무성한 이파리와 어여쁜 꽃을 가졌던  겨울나무는 아름답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도. 결코 가난하지 않은 자세를 그는 안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은 아름답다. 오랜 세월 인간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해 더욱 아름답다."<도종환, 나무, 전문>.

여백이 주는 수묵화를 담은 마이클 케나의 사진과 어울리는 김주대 시인의 시 <귀로 듣는 수묵화>

마이클 케나는 이미지를 풍부한 디테일로 채우는 대신 "적을수록 좋다"라는 무소유를 지향하는 수도승처럼 이미지를 빈 여백으로 남겨둡니다. 물론, 빈 여백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그가 촬영한 일본의 풍경사진은 하이쿠의 정취를 전달하는 반면, 중국에서 촬영된 황산 사진은 수묵화와 같은 심오함이 엿보입니다. 마이클 케나의 관점을 단적으로 표현한 가네코 류이치의 말을 인용할까 합니다. 가네코 류이치는 케나의 출판물 서문에서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는 왼쪽 눈으로는 서양의 시각으로, 오른쪽 눈으로는 동양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각 세계의 관점을 자신의 관점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 불완전한 눈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는 것은 환상이라는 현실입니다."라는 멋진 서문을 완성합니다. 재미있는 한 편의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김주대 시인의 시 귀로 듣는 수묵화라는 시입니다. 마이클 케나의 조용한 수묵화에 시끄러운 소리로 먹칠하는 듯한 시입니다. 이 시를 듣고 마이클 케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먹물을 잔뜩 묻힌 굵은 붓이 화선지에 한일자를 쓰듯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쓸며 지나간다. 갑자기 시커멓게 번지는 소리를 올려다본다. 귀가 젖을 만큼 먹물이 쏟아진다. 방금 시작된 이쪽의 뜨거운 소리와 저쪽의 수그러드는 소리가 농담을 조절하며 수묵화를 그린다. 여럿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울음의 귀로 듣는 수묵화. 아,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누군가를 저토록 까맣게 운 적이 내게도 있을까. 여백 없는 동양화 속을 화끈거리는 귀가 걸어간다."<김주대, 귀로 듣는 수묵화, 전문> 우리는 여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