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편견에 맞선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와 어울리는 시 감상
다이앤 아버스는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고 금기시되던 사람들을 연민하기 보다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렌즈에 담아낸 사진가'라고 정의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시선으로 보자면 '소외'라는 단어도 바른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특별함'이라고 정정해야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기형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와 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시련을 존재함으로써 이미 초월하고 있다. 그들은 고귀한 사람이다. 기형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스스로에게 인생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이집트의 스핑크스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따뜻한 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또한 그녀 스스로에게 던지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한 것도 그녀 자신이었고 그러한 시련을 존재함으로써 초월하고 싶어 했던 것도 그녀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촬영한 기형인이나 거인의 존재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처럼 웅장하고 신비로우며, 수수께끼를 품은 수호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인간들을 수호하는 기형의 수호자들처럼. 마블영화에 등장하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처럼 말입니다. "독수리는 바람의 저항이 없으면 날 수가 없고 고래는 물결의 저항이 없으면 뜰 수가 없다 사람은 어떻게 저항해야 살 수가 있나"<천양희, 저항, 전문>, 천양희 시인의 저항이라는 시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든 특별한 사람이든 우리는 시련 앞에 맞서야 합니다. 금기와 편견 앞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두뇌와 심장과 용기를 심어준 오즈( Odds )의 마법사 다이앤 아버스와 김성대 시인의 시 <결핍체> 감상
기형인, 난쟁이, 거인, 삼류 서커스단, 동성애자, 나체주의자, 트랜스젠더 등 세상의 모든 주류가 꺼려하는 인간 군상을 프레임에 담아낸 그녀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의 ‘Oz’ 대신 비슷한 발음의 ‘Odds(이상한 것)’를 넣은 ‘이상한 것들의 마법사(The wizard of odds)’로 불렸습니다. 그녀가 이러한 '특별한' 사람들을 촬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는 1923년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특권적인 집안 환경을 콤플렉스로 여겼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뉴욕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위선적인 삶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18세의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남편인 앨런과 패션 사진 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사진작가로서 활약하는 동안 그녀는 '스타일리스트'의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녀는 결핍을 느낍니다. 1958년에야 비로소 다이앤은 여성 사진작가인 리젯 모델(Lisette Model)에게 뉴스쿨 대학에서 사진을 사사 받습니다. 리젯 모델의 사진적 주제를 이어받은 다이앤은 이를 보다 심화시키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사진의 결과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 속 특별한 인물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점점 그들의 순수한 진정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정사각형 포맷의 중앙을 차지한 이 특별한 주인공들에게 다이앤은 환한 낮에도 플래시를 터뜨려 기형인들의 신체를 더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소수자란 프레임에 갇혀 차별과 동정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 오즈의 마법사인 다이앤의 렌즈를 통해 두뇌와 심장과 용기를 얻은 온전한 인격체가 되었습니다. 아래는 김성대 시인의 시 '겹핍체'입니다. "당신에 관한 소설을 쓸 때 당신은 결핍증을 앓고 있었다. 당신을 위한 아다지오 하루에 한 문장 이상 쓰는 건 내게 과분했다 펜의 부기가 빠지길 기다려야 했고 차가운 펜에 닿으면 감기가 걸리곤 했다 소설이라는 건 주위를 맴돌며 핵심을 피해 가는 거라서 때로 사소한 감정들이 남기도 했다. 당신에 관한 소설을 쓸 때는 순간을 받아 적는 일이 전부였다 그건 자서전과는 다른 일 조금 잔인한 방법이었다 당신이 말할 때 튀는 침과 그 침에 섞인 희망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욕망과 그 욕망에 담긴 비겁함과 그 비겁함을 둘러싼, 그래도 삶은 계속되다는 터무니없는 용기를 나는 받아 적었다. 서서히 볼륨이 커가는 당신을 위한 아다지오 이다지도 다듬지 않아 더듬더듬 읽게 되지만 그건 당신에 관한 소설이니까 그건 당신의 완전한 결핍이니까 당신은 검열하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수혈을 하거나 약을 먹는 당신에 관한 주석을 달까도 했지만 그건 이미 써버린 소설 차곡차곡 한 문장씩 당신을 없애는 거"<김성대, 겹핍체, 전문>,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녀가 촬영한 특별한 사람들은 완전체입니까? 결핍체입니까?
또 다른 생과 사, 다이앤 아버스에게 바치는 시 <들풀 꽃>
그녀는 생전에 한차례도 개인전을 개최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남편 앨런과의 이혼 이후 우울증 때문이었는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상반된 평가로 인한 괴리감 때문이었는지, 1971년 48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다이앤 아버스 사진 속의 주제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가족과 거주자들이었다. 사진 속에서 나타나는 이 비정상적인 곳은 바로 미국이다.”라며 아메리칸드림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직시하게 했으며, 이러한 범주에서 다이앤의 사진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스스로의 어둠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는 사후에야 비로소 빛을 발했습니다. 그녀 사후 1972년에 열린 뉴욕 회고전에는 2개월 동안 20여만 명이 동원됐으며, 전 세계 순회전까지 합하면 700만 명이 다이앤을 추모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미국 사진가 중 최초로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다이앤 아버스에게 김광렬 시인의 '들풀꽃'을 바칩니다. "너는 아픔을 말하기 위하여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너는 자유를 말하기 위하여 너의 뜨거운 혼의 부르짖음을 향하여 처절한 저항을 향하여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참담하게 오늘을 살기 위하여 흔들리는 너 들풀꽃"<김광렬, 들풀꽃, 전문>